2001년 9월 28일에 이 홈페이지를 시작하며 저는 다음과 같은 홈페이지를 여는 인사말씀을 드렸습니다.
“나는 이때까지 세상으로부터 여러 가지 형태의 것을 받기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가족의 보살핌, 이웃의 배려, 내가 다닌 여러 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 직장의 선배님들과 동료들의 지도와 지지, 나라와 국제사회가 주는 여러 가지 특권들을 누리면서 나는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나는 세상을 위해 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 너무 늦은 편이기는 하나 아무 것도 하지 않음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 동안 제가 세상에서 얻은 것에 약간의 덤을 붙여 세상에 돌려주려 이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토양, 비료, 작물, 농업환경 등의 분야별로 제가 아는 바를 실어볼까 합니다.

특히 비록 제 전문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이 엄마와 함께 농업이라는 현상에 대한 기초적인 인식을 체계화는 데에 도움을 될 이야기도 실어보려 합니다.

제 작은 노력이 적게나마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제게 큰 광영일 것입니다“

이제 이 홈페이지를 연지 5년이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처음에 마음먹었던 대로 이 홈페이지를 운영해오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농사와 흙의 중요성에 대해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변변히 싣지 못 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부분은 잘 운영해온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어 초심으로 돌아가, 더 알찬 홈페이지로 변신시켜갈 작정입니다. 그동안 경험을 통하여 얻은 바를 바탕으로 저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입장을 지키면서 이 홈페이지를 운영해가려합니다.

 
1. 사람은 누구나 편하게 살 권리를 가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합니다. 그것은 매우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하는 것은 고상한 것이지만,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을 필요 이상 고단하게 하고 이웃과 환경에 대해 필요 이상의 부담을 끼치는 것은 되도록 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은 과학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환경보존 같은 것이랴 말로 감성적으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농업에 어떤 명칭을 부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내용이 어떻게 과학적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일을 편하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과학입니다. 과학이라는 일꾼을 잘 부리며 일을 하면 자신에게도 편하고 이웃과 환경에도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이을 ㅅ더 성과 있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많은 나라들이 겪고 있는 가난은 타파되어야 하고, 타파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계의 한 부분에서는 인류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세계의 다른 부분에서는 사람들이 가난에 찌들고 있습니다. 더러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가난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가나한 나라들에서는 가난이 가난을 낳는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합니다. 그 가난의 악순환이란 것은 이런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화급한 것은 먹는 문제에 대한 근심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먹을거리는 대개 농사를 통해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농사의 소출이 매우 낮습니다. 농가가 가난해서 농사를 소출이 높도록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농사의 소출이 낮은 것입니다. 농사의 소출이 낮으니 농가가 가난을 면할 수 없습니다. 결국 가난이 가난을 낳습니다. 이것이 가난의 악순환입니다. 가난의 악순환이 깨어지지 않는 한 가난한 나라들의 가난은 어쩔 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가난의 악순환은 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만약 가난한 나라들을 가난의 굴레에 묶여 있게 하는 가난의 악순환이 깨어질 수 없다면 가난한 날들은 영원히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가난의 악수환은 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농사의 소출이 매우 적다는 사실인데 그 원인은 농토에 작물이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양분들 가운데 작물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양분, 질소와 인산이 매우 적습니다. 그 이유는 작물이 특히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양분들을 토양에 보충해주지는 않고 계속 작물을 재배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의 농사법의 차이는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농토에 작물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양분을 지속적으로 보충해주면서 (즉 비료를 계속 주면서) 농사를 짓지만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농토에 아무 것도 주지 못하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 있는 농토에서도 작물이 자라면서 농토로부터 흡수해서 제거하는 중요한 작물양분을 사람이 보충해주지 않고 소출 높은 농사를 오래 지을 수는 없습니다. 토양은 작물이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양분을 자연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만 작물이 필요로 하는 모든 양분을 제때에 넉넉히 공급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지역에서도 한 지점에서 농사를 오래 지으면서 높은 소출을 내려면 반드시 토양이 미쳐 공급하지 못하는 작물양분은 농사짓는 이가 적절히 보충해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농상의 소출은 점점 낮아져 언젠가는 그 토양에서 더 이상 농사를 짓는 것이 헛수고에 그치게 됩니다.



같은 땅에서 비료를 주지않고 수수를 오래 재배할 때
수량 변동 (나이제리아, 카노) Nye와 Greenland 1960
옆의 그림은 1931~1950 사이에 아프리카의 한 화전으로 만든 밭에서 거름을 주지 않고 수수를 재배했을 때 수수 수량이 빠르게 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수수 수량을 우리나라에서 쓰는 단위로 바꾸면 첫 5년 사이이의 평균수량은 10 a (반) 당 50 도 되지 않습니다. 밭을 만들고 거름을 주지 않고 수수를 15년 이상 재배하면 수수 수량은 반 당 10 kg도 되지 않습니다. 수수 수량이 이렇게 낮으면 농가는 몇 사람의 가족이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도만도 매우 넓은 땅에서 수수를 재배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한 농가의 가족이 4 명이고 (더 많은 경우가 보통임) 한 사람이 한 해에 150 kg의 수수를 먹어야 하고 수수 수량이 반(300 평) 당 50 kg이라면 이 농가는 가족이 먹을 수수를 생산하기 위해서만도 3600 평의 땅에 수수를 재배해야 할 것입니다. 벼를 재배할 때 비료를 잘 주면 쌀 수량이 반(300 평) 당 500 kg 정도는 뒵니다. 이 쌀은 4 사람의 가족이 1 년 동안 먹기에 충분한 양입니다.
비료를 쓰지 못하면서 화전농법으로 수수를 재배할 때에는 4 사람의 가족이 한 해 동안 먹을 수수를 생산하기 위해 3600 평의 땅이 필요하지만 비료를 우리나라에서처럼 비료를 잘 쓰면서 농사를 지으면 4 사람의 가족이 한 해 동안 먹을 쌀을 얻는 데에 필요한 땅은 300 평이면 충분합니다. 따라서 화전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같은 수의 가족이 먹을 양식을 얻는 데에 비료를 잘 주면서 농사를 짓는 경우에 비해 12 배의 농토가 필요하게 됩니다. 농사의 소출이 이처럼 낮은 것이 가난한 나라들의 가장 큰 가난의 원인입니다. 이라 나라들이 가난을 면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은 농상의 소출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일 것입니다. 화전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화전농법을 버리고 비료를 적절히 쓰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가난한 나라들의 농민들이 나라의 가난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은 중명되어 왔습니다. 위이 사진은 인도에서 수수에 비료를 자 주면 수수농사가 얼마나 잘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 쪽 사진은 비료를 주지 않고 재배하는 수수밭의 수수가 자라는 모양이고 오른 쪽은 비료를 잘 주고 재배한 수수의 모습입니다. 왼 쪽 밭에서는 수수가 300 평 당 70 kg 밖에 나지 않았지만 오른 쪽 밭에서는 수수 수량이 300 평 당 650 kg 이었습니다. 비료를 잘 주면 수수 수량이 9 배 시안 증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땅을 어머니의 가슴에 비유합니다. 어머니의 가승에 젖이 있어 어머니 가슴이 우리를 길러주듯 땅도 거기에 작물이 자라게 함으로써 우리가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신비한 어머니 가슴일지라도 어머니가 굶으면 젖을 낼 수 없듯이 땅에도 필요한 것을 채워주지 않으면 거기에서 작물이 잘 자랄 수 없고 땅에서 작물이 잘 자라지 않으면 그 땅에 사는 이들은 곤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 많은 나라들의 가난의 뿌리는 작물이 많이 필요로 하는 양분이 부족한 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나라들의 농토에 작물이 많이 필요로 하는 양분을 적절히 보충해주면 그런 날들도 조만 간 극도의 가난은 면하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지구온난화에 대해 적절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Al Gore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지구온난화에 기여하는 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의 탄사가스농도가 높아지는 것이며, 산업화의 지전에 따라 많은 양의 화석연료를 방만하게 태워온 것이 대기의 탄산가스를 높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진솔하게 받아들여 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래 동안 화석연료 사용이 몸에 밴 우리들에게는 받아드리기 매우 거북하겠지만 사실은 사실로 도 받아드리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의 활용에 적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화석연료를 방만하게 태우는 것은 땅 속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을 꺼내어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화석연료는 되도록 덜 태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편리한 생화를 하는 데데 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말자는 것은 어닙니다. 화석연료 이오의 에너지를 되도록 많이 개발해서 편리한 생활은 계속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4. 흙에 대한 사랑은 흙의 짜임새와 기능을 바로 아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흙을 살리자는 구호를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 듯은 흙을 아끼자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구호를 내세우기는 하면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흙을 아끼는 것인지에 대해 적절히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흙을 살리자는 구호를 내세우기만 하면 흙을 아끼는 것으로 여긴다면 크게 잘 못 생각하는 것일 것입니다.

농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짓는 것인지도 잘 아지 못하면서 농사를 지을4. 흙에 대한 사랑은 흙의 짜임새와 기능을 바로 아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흙을 살리자는 구호를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 듯은 흙을 아끼자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구호를 내세우기는 하면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흙을 아끼는 것인지에 대해 적절히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흙을 살리자는 구호를 내세우기만 하면 흙을 아끼는 것으로 여긴다면 크게 잘 못 생각하는 것일 것입니다.

농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짓는 것인지도 잘 아지 못하면서 농사를 지을 때 토양은 이렇게 다루라, 저렇게 다루라고 주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흙에 이런 것은 넣지 말라 저건 것은 넣지 말라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농사는 흙의 능력을 이용하는 산업인데, 그리고 흙의 능력을 이용할 때에는 흙이 갖추지 못한 부분은 보완해주어야 흙의 능력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흙에 충분이 들어 있지 않은, 작물이 특히 많이 요구하는 양분을 보충해주기 위해 쓰는 화학비료를 쓰면 흙의 성질이 나빠진다는 생각은 사실과 다릅니다. 더 보기

농토에 화학비료를 쓰면 농토가 흙이 산성으로 변하여 농토의 질이 나자진다고 여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한 비료를 흙에 섞어주었을 때 흙이 산성으로 변하는 것은 자연과 동떨어진 실험실에서나 관찰되는 현상이지 흙이 비를 맞는 자연 상태에서까지 적용할 수 있는 논리는 아닙니다. 자연에 있는 흙은 비를 맞게 되고 빗물에는 공기 중에 있는 탄산가스가 녹아 있어 비가 많이 오는 곳에 있는 흙은 화하비료를 주던 안 주던 산성흙이 됩니다. 사실은 비료를 잘 주면서 농사를 잘 짓는 땅의 흙은 그러지 않는 땅의 흙보다 산성이 덜 강하기 마련입니다.
이 사실은 비료를 전혀 준 적이 없는 산에 있는 흙이 그 산 가까운 곳에 있는 비료를 오랴 동안 써온 농토에 있는 흙보다 더 산성이 강하다는 사실로부터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최근에 농업과학기술원이 널리 조사하여 상세히 밝힌바 있습니다.

화학비료를 쓰면 농토가 척박해지거나 심지어 죽는다고까지 생각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것은 사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잘 쓰는 괭이는 녹슬지 않는다.” 잘 쓰는 괭이는 늘 손질하기 때문에 늘 쓰기 좋은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에 녹슬지도 않고 다른 결함도 없을 것입니다. 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료도 잘 주면서 소출을 높도록 관리한 땅은 그러지 않은 땅에 비해 좋은 상태로 유지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비료를 잘 주어 벼 소출이 높은 경우에는 볏짚도 더 많이 생산될 것입니다. 더 많은 볏짚이 생산되면 더 많은 볏짚이 논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볏짚이 흙에 들어가면 흙에 사는 여러 가지 생물들이 더 많이 번식할 수 있고, 흙에, 흙의 성질을 좋게 하는 부식과 그 밖의 토양유기물이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따라서 비료를 잘 주면서 농사를 잘 짓는 땅은 그렇지 않은 땅에 비해 더 좋은 당이 될 것입니다.

때 토양은 이렇게 다루라, 저렇게 다루라고 주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흙에 이런 것은 넣지 말라 저건 것은 넣지 말라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농사는 흙의 능력을 이용하는 산업인데, 그리고 흙의 능력을 이용할 때에는 흙이 갖추지 못한 부분은 보완해주어야 흙의 능력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흙에 충분이 들어 있지 않은, 작물이 특히 많이 요구하는 양분을 보충해주기 위해 쓰는 화학비료를 쓰면 흙의 성질이 나빠진다는 생각은 사실과 다릅니다. 더 보기

농토에 화학비료를 쓰면 농토가 흙이 산성으로 변하여 농토의 질이 나자진다고 여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한 비료를 흙에 섞어주었을 때 흙이 산성으로 변하는 것은 자연과 동떨어진 실험실에서나 관찰되는 현상이지 흙이 비를 맞는 자연 상태에서까지 적용할 수 있는 논리는 아닙니다. 자연에 있는 흙은 비를 맞게 되고 빗물에는 공기 중에 있는 탄산가스가 녹아 있어 비가 많이 오는 곳에 있는 흙은 화하비료를 주던 안 주던 산성흙이 됩니다. 사실은 비료를 잘 주면서 농사를 잘 짓는 땅의 흙은 그러지 않는 땅의 흙보다 산성이 덜 강하기 마련입니다.
이 사실은 비료를 전혀 준 적이 없는 산에 있는 흙이 그 산 가까운 곳에 있는 비료를 오랴 동안 써온 농토에 있는 흙보다 더 산성이 강하다는 사실로부터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최근에 농업과학기술원이 널리 조사하여 상세히 밝힌바 있습니다.

화학비료를 쓰면 농토가 척박해지거나 심지어 죽는다고까지 생각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것은 사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잘 쓰는 괭이는 녹슬지 않는다.” 잘 쓰는 괭이는 늘 손질하기 때문에 늘 쓰기 좋은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에 녹슬지도 않고 다른 결함도 없을 것입니다. 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료도 잘 주면서 소출을 높도록 관리한 땅은 그러지 않은 땅에 비해 좋은 상태로 유지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비료를 잘 주어 벼 소출이 높은 경우에는 볏짚도 더 많이 생산될 것입니다. 더 많은 볏짚이 생산되면 더 많은 볏짚이 논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볏짚이 흙에 들어가면 흙에 사는 여러 가지 생물들이 더 많이 번식할 수 있고, 흙에, 흙의 성질을 좋게 하는 부식과 그 밖의 토양유기물이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따라서 비료를 잘 주면서 농사를 잘 짓는 땅은 그렇지 않은 땅에 비해 더 좋은 당이 될 것입니다.

 
왼 쪽의 사진은 비료를 적절히 주고 벼농사를 잘 지은 논에서 벼룰 수화가한 뒤의 모습니다. 많은 양의 볏짚이 논에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비료를 주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면 벼룰 수확한 뒤, 농으로 되돌아가는 볏짚의 양은 이 경우보다 훨씬 적을 것입니다. 비료를 알맞게 주며 농사를 짓는 것은 통토의 흙을 산성화하지도 않고 척박하게 하지도 않습니다.흙은 바위가 풍화되어 (자연의 영향을 받아 부서져) 만들어진 크기가 다른 광물질 입자와, 땅에 살던 생물들이 죽은 뒤 흙으로 들어가 분해되고 남은 여러 가지 유기물 입자들이 섞어진 혼합체입니다. 흙을 구성하는 광물질과 유기물은 쉬지 않고 변하면서 작물이 필요로 하는 양분의 일부를 공급해주기도 합니다. 한 편 흙을 구성하는 광물질과 유기물의 일부는 입자의 크기가 매우 작습니다. 이런 작은 입자들은 서로 어울려 흙에 작은 틈새들이 생기게 해줍니다.
 


이 밭에 비가 내리면 빗물은 흙에 스며듭니다.
흙에 스며든 물은 모두 땅 속으로 빠져 나가지
않고 흙 알맹이 사이의 작은 틈새(공극)에 남아
있으면서 작물에게 이용됩니다.
그래서 흙은 일종의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흙에 남아 있는 물에는 작물이 용할 수 있는
양분이 녹아 있습니다.
흙에 생기는 이 틈새들을 토양공극(土壤空隙)이라고 합니다. 토양공극 가운데에는 다소 큰 것도 있고 매우 작은 것도 있습니다. 작은 토양공극에는 물이 들어 있고 큰 토양공극에는 공기가 들어 있습니다. 토양공극에 들어 있는 물과 공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작은 토양공극에 들어 있는 물에는 작물이 필요로 하는 양분들이 녹아 있어서 작물이 그 물을 발아드림으로써 양분을 흡수할 수 있고, 큰 토양공극에 들어 있는 공기에는 작물 뿌리와 흙에 사는 다른 여러 가지 생물들이 숨을 쉬는 데에 필요한 산소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뜻에서 보면 흙은 일종의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흙은 흙에 사는 여러 가지 생물들의 생활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흙의 이와 같은 기능들은 화학비료 같은 것을 준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학비료 같은 것을 쓰면 흙이 죽으리라고 염려하는 것은 기우(杞憂)입니다.
어떤 이들은 흙을 살리기 위해서는 특별한 미생물 같은 것은 넣어주는 것이 좋다고 여깁니다. 이 생각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농사를 잘 지어온 흙에는 여러 가지 미생물들이 있습니다. 흙에 들어 있는 미생물들은 그들이 먹을 것이 흙으로 들어오기를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즉 흙에 들어 있는 미생물들은 언제나 배고픈 상태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흙에든 미생물이 먹을 수 있는 유기물이 들어가면 분해됩니다. 이 때 물론 미생물이 수가 부쩍 증가합니다.그러다가 먹을거리가 떨어지면 실제로 활동하는 미생물의 수는 크게 감소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대 흙에서 미생물이 잘 활동하게 하려면 어떤 미생물을 흙에 넣어 주는 대신에 미생물의 먹을거리가 될 수 있는 유기물을 흙에 넣어주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왼 쪽이 사진은 낙엽이 많이
사인 곳에서 겉에 있는 낙엽을 조금 걷어냈을 때 낙엽을 썩히면서 많은 곰팡이가 자라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곳에 아무도 어떤 미생물의 종자도 뿌리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번식한 것입니다. 흙에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있지 않았다면 오늘날 지구표면에는 태고로부터 지금까지 기나 긴 세월 동안 지구에 살았던 생물들의 시체들로 덮였을 것입니다. 그동안 지구에 살다 죽은 생물들이 무수히 많았고 그 죽은 몸들은 모두 흙으로 돌아갔는데도 오늘날 지구 표면의 땅에 그 생물들의 시체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모든 곳의 흙에 미생물들이 왕성하게 활동해 왔음을 말해줍니다. 이점을 생각할 때 흙의 미생물을 활성화하기 위해 흙에 미생물의 포자를 넣어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작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흙에 여러 가지 미량원소들을 줄 필요가 있을까?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작물이 원만하게 자라는 데에 여러 가지 미량원소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늘 흙에 미량원소를 넣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작물이 필요로 하는 미량원소의 양은 매우 적고 그 정도는 특별한 경루가 아니면 흙에서 자연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흙을 잘 못 다뤄 흙의 pH가 지나치게 높아진 경우, 또는 천연적으로 흙의 pH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에는 철, 아연, 구리, 망간 같은 금속 미량원소들을 작물이 잘 이용할 수 없게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흙의 pH는 그럴 위험이 없는 수준입니다. 가끔 석회암이 많이 분포된 곳에서 아연 부족에 민감한 품종을 재배할 때 아연부족 현상이 관찰 된 바 있습니다. 더러 석회를 너무 많이 주거나 돼지 똥을 원료로 해서 만든 육질비료를 과용하여 흙의 pH가 너무 높아진 경우에 철 부족현상이 관찰되기도 합니다. 이 밖에 석회를 지나치게 많이 준 경우에 과수나 채소에 붕소결핍증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스러운 조건 즉 흙의 pH가 5.5 ~ 6.0 정도인 조건에서는 하학비료와 농업부산물로 만든 토비 같은 것을 적절히 주면 미량원소부족현상은 잘 방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량원소 같은 것을 앞뒤 따져보지 않고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흙을 너무 소홀히 다루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흙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농가에서는 대체로 흙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흙에 무슨 아미노산이니 효소니 하는 것을 주는 것도 흙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예입니다. 흙에는 여러 가지 효소도 아미노산도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흙에는 여러 가지 생물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이 활동하는 곳에는 여러 가지 아미노산도 효소도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산에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보십시오. 그런 나무들이 자라는 흙에 어떤 미량원원소도, 어떤 미생물도, 어떤 효소도, 어떤 아미노산도 주지 않지만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그곳의 흙에는 질소, 인산, 가리 같은 비료도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되는 것은 그 흙에서 나무가 흡수한 양분은 낙엽을 통하여 다시 흙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왼 쪽 그림) 농사짓는 땅에서는 농산물이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갈 때 작물이 흙에서 흡수한 양분도 함께 빠져 나가기 때문에 비료를 통해 작물양분을 흙에 보충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5.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지 않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농업과 환경 사랑
우리나라의 농업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면서 우리 농업을 사랑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농산물을 우선 적으로 소비하자,” “우리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와의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말자.” 등의 구호가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그런데 우리들 개개인의 행동은 그런 훌륭한 구호와는 전혀 다릅니다. 멀쩡한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는 일은 농업사랑을 잊는 일이며, 환경사랑과도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먹는 쌀을 한지로는 米라고 씁니다. 이 글자를 八이라는 글자와 十이라는 글자와 八이라는 글자를 합친 글자라고 풀이하기도 하는데 한 알의 쌀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에는 사람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이나 가야 함을 뜻하는 것이라는 뜻을 담습니다. 그만큼 쌀농사를 짓는 데에는 농업인들의 땀과 노심초사(勞心焦思: 걱정하며 마음을 태움)가 따른 다는 뜻이 입니다. 가물면 가물어 걱정, 장마가 지면 물난리를 걱정해야 하고 잡초와 병과 해충을 걱정해야 하고 쌀을 생산한 뒤에는 수입 쌀 때문에 떨어지는 쌀값을 걱정해야 하고.
한 알의 쌀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데에는 농업인의 땀과 근심걱정만 따른 것이 아닙니다. 모를 기르고, 모내기를 하고, 잡초와 병해충을 관리하고, 수확하고, 벼를 찧어 쌀로 만드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에너지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 화석연료를 태워서 얻습니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일은 경제적인 부담도 되지만 그것이 탈 때 생기는 탄산가스는 공기 중에 머물면서 지구의 온도를 올리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한 알의 쌀이 식탁에 오른 데에는 이처럼 큰 경제적 부담과 환경적 부담이 따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쌀에만 농업인들의 땀과, 근심걱정과 경제적 환경적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식탁에 오르는 모든 것에도 그런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무심히 다루고 있는 물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 있습니다.

음식 쓰레기로 버리면 그 자체로도 손해이지만 그 것을 처리하는 데에 또한 큰 비용이 들고 환경에도 큰 부담을 주게 됩니다. 특히 음식쓰레기에 들어 있는 소금은 농토에 들어가면 작물을 잘 자라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특히 큰 문제가 됩니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에 들어간 농업인들의 땀과 근신걱정을 생각 할 때, 농사에 들어간 경제적 환경적 비용 등을 생각할 때 귀하기 짝이 없는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는 일은 참으로 양식(良識) 있는 시민이 할 일이 못됩니다. 참으로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는 것은 농업사랑에 어긋나며 환경사랑과 어긋납니다. 농업사랑, 환경사랑 하면서 큰 소리 내기 전에 울이들 모두 음식을 소중하게 먹는 일부터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흉하게 쓰레기로 버려 퇴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부도덕하고 어리석은 습관은 하루 속히 버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