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Re:도와주세요. 박사님.
글쓴이 홍종운 날짜 2011-04-06 조회 1402
첨부파일  



박수미 선생님: 초등학교에서부터 토양에 대해 가르치게 되었다는 소식은 좋은 소식이지만 그 내용이 적절하지 못한 것은 나쁜 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못 가르치면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대 헛된 일을 하게 되기 때문에 화근이 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국민에게 토양에 관한 건전한 상식의 틀을 잡아 주는 게 초등학교에서 토양에 대해 가르치는 목적이라면 토양의 산도 같은 것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그리 급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탓인지는 몰라도(아마도 한국전쟁 후에 우리나라를 돕겠다고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파견됐던 토양과 농사에 대한 식견이 그리 탁월하지 못했던 미국의 관료들의 영향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토양산도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토양이 산성인 것이 농사에 결정적인 여향을 주기라도 하는 듯이 여기며 토양에 대해 가르치라면 토양산도를 먼저 들고 나오는데 이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화학비료를 쓰면 토양이 산성화하여 큰 문제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 하는 것은 더더욱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산도 측정기로 어떤 토양의 산도를 측정해 보이는 게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에 효과가 있어 그런 걸 택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건 훨씬 뒤에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흙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식물을 잘 자라도록 해주는가? 같은 걸 먼저 일깨워주는 게 더 중요할 것입니다. 흙의 산도는 지역의 기후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그 지역에 오래 동안 적응된 식물들은 그 지역에 있는 토양에 적음된 것이니 굳이 흙의 산도 같은 걸 인공적으로 조절하려는 것은 피곤하면서도 큰 성과를 올릴 수도 없는 법입니다. 그 일을 해서 다소간의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을 하기 위해(산성 땅을 중화시키는 데 쓰일 석회(탄산석회)를 업기 위해 산을 파헤치고, 암석을 분쇄하고 운반하는 데에 따르는 금전적, 환경적 대가를 생각하면 크게 득이 되는 게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질문하신 것과 관련해서 몇 말씀드리겠습니다.

운동장의 흙과 정원이의 흙이 왜 모두 중성에 가까운가?

운동장의 흙이 중성에 가까운 것은 선생님께서 짐작하시는 바도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정원의 흙이 중성인 것은 이해하시기 어렵다는 의견이신 것 같은데 그 또한 타당성이 있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정원의 흙까지 산성이 아닌 중성인가? 거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원에(정원이 아니더라도) 무얼 심는다하면 예외 없이 유기질비료라는 걸 많이 씁니다. 결코 합리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철쭉이나 진달래 같은 식물은 산성흙을 좋아하는데 그런 나무를 심을 때 또는 그런 나무가 자라고 있는 데에도 유기질비료를 많이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화학비료는 나쁘고 유기질비료는 좋을 것이라는 대중적 오해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아무데나 무얼 심으려 할 때에는 유기질비료라는 걸 많이 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기질비료는 가축의 똥의 수분을 고려하여 마른 톱밥 같은 것을 섞어 발효시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료들은 대개 알칼리성입니다. 따라서 그런 것을 오래 동안 써온 정원의 흙의 pH는 6.5~7.5 정도가 됩니다. 그게 반드시 바람직한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 흙에는 염분도 상대적으로 많은 경우도 있고 인산과 칼슘, 칼륨 같은 것도 필요 이상 많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다음에 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시거든 그런 불합리한 일일랑 하지 마십시오.

비료 녹인 물에 pH 검사 종이를 넣어봤더니 역시 중성 또는 알칼리성이었다. 왜?

꼭 비료가 흙을 산성화하는 걸 피하기 위해 비료를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건 아닙니다.

비료를 주었을 때 흙이 산성화하는 것과 비료를 흙과 섞었을 때의 pH 값과는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 모든 화학비료를 물에 녹였을 때 그 용액의 pH가 중성 또는 알칼리성인 건 아닙니다. 예전에 많이 쓰였던 유안(유산암모니움 또는 황안: 황산암모니움)은 물에 녹이면 산성이고 과석(과린산석회), 중과석(중과린산석회) 같은 것도 물에 녹이면 그 용액이 강한 산성입니다.

흙의 pH를 잴 때, 어떤 물을 쓸 것인가?
대개 증류수를 쓰는 것은 물의 성질 때문에 pH 값이 영향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바닷물을 써서 흙의 pH를 재면 흙의 특성에 따라 pH가 다르게 측정될 수 있습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증류수를 구하기 어려우면 병에 넣어 파는 음용수 정도를 써도 무방할 것입니다.

흙의 pH를 재기 위해 물과 섞는 비율은 1:1~1:5의 범위 내에서는 큰 차이는 없지만 데이터의 횡적(橫的)인 비교를 위해서는 일정한 방법을 쓰는 게 더 적절합니다. 그래서 표준법을 따르는 게 좋을 것입니다.

흙의 pH를 재기 위해 흙과 물을 섞은 다음 한 시간을 저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1 분간만 잘 섞어주어도 됩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저어 주는 건 오차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측정하는 장소의 공기 중에 암모니아(또는 아황산) 같은 게 있다면 그 암모니아나 아황산이 물에 녹아 pH 값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되도록 즉시 재는 게 더 바람직합니다.

나 같은 개인이 이런 말을 하는 건 교과서를 쓰시고 편집하신 분들에게 미안 하지만 작업을 더 신중하게 하셨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다음에 요직에 가시거든 이런 일 더 신중하게 하십시오.

초등학교에도 전문교사제도 같은 게 있고 그분들이 좀 더 깊이 공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선생님들마다 토양에 대해 깊이 공부할 것을 주문하는 건 현실적이 아닐 것이니 말입니다.

긴 글이 됐습니다.

내 글에 대해 소견이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이 다음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니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홍종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