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생 8학년이 되어
글쓴이 홍종운 날짜 2016-01-20 조회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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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에 들어서서 게을러졌는가? 소심해졌는가? 80살리 된지 극 한 달이 됐다. 그런데 그 사이에 facebook에 올린 글이 별로 없다. 게을러져서 그랬을까? 소심해져서 그래을까? 꼭 게을러져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소심해져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한 권의 책에 심취해서 그랬던 것 같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Alfred Adler: Individual Psychology)을 고가후미타케(古賀史健)씨가 나름대로 갈무리 한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머리맡에 두고 매일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했다. 80 세인 나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80 세가 비록 새로운 삶을 생각하기에는 썩 이른 나이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단념해야 할 나이도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 기왕 살아갈 바에야 뜻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저런 궁리를 하게 됐다. 그런데 답을 찾은 것 같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람은 과거에서 해방되고 미래의 부담에서 해방되는 순간 행복해질 수 있고 현재를 위해 최선을 다 할 수 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과거에 매이거나 지금이 아닌 과거에 미래를 위해 세웠던 목표에 매어 현재를 구속하는 것이 현재의 나의 운신(運身)의 폭을 좁힌다면, 그래서 평생에 딱 한번밖에 없을, 결코 오래 머물지도 않을 현재를 현재의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해 활용할 수 없게 한다면 그처럼 딱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최선을 다 하는 것이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에나 과거와 결별하고 (사실은 결별할 필요도 없이 결별된 과거를 잊는 순간) 현재를 더 적극적으로 행복하게 살 준비가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람은 과거와 결별하는 순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책임한 찰나주의(刹那主義)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자기 책임 하에 이루어진 모든 일들의 책임으로부터 사람이 지류로워진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첵임 때문에 작의 현재라는 불이(不二)의 기회를 무위(無爲)하게 보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라는 걸 과거로부터 미래로 연결하는 점 정도만으로만 여겨서는 안 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 기회로 여기자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산다는 건 무한히 짧은 순간들의 삶의 연속임을 생각해봐도 현재라는 순간들을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농도 짙게 매 현재들을 살아야 굵은 자국을 남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니.... 내 비록 나이 들었지만, 또 이제까지는 비록 이렇다 할 만 한 자국을 못 남겨 왔지만 그렇다고 내 앞에 닥치는 매 순간들을 무위하게 살기로 작정한다면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무엇일까? 열심히 이타적(利他的)으로 살자. 그래야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참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 가가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니... 인생 8 학년이 된 나는 그걸 새삼스럽게 깨닫고 실천하려 한다. 서두르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