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 나라의 진정한 독립
글쓴이 홍종운 날짜 2015-12-16 조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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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진정한 독립: 흔히 독립을 정치적 독립만 뜻하는 것 같다. 다른 나라로터 간섭을 받지 않는 걸 독립의 핵심으로 여기는 것 같다.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는 걸 독립으로 여긴다. 세계 제 차 대전 후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정부를 수립하고 외교권을 확보했다. 그걸 독립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그건 전적으로 옳은 것 같지 않다. 정치적으로만 독립하고 경제적으로 돌립하지 못한 상태의 독립은 명색만의 독립일 수 있다. 특히 먹을 걸 독립적으로 환보할 수 없다면 독립이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후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이 독립을 얻었다. 그런데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이 국민은 굶는 처지에서 독립했다. 그런 독립이 온전한 독립이었을까? 그렇지 못했다. 때때로 기근(饑饉)이라도 들면 옛 종주국들에게 먹을 걸 의존해야 했다. 그런데 농사기술이 낙후(落後)한 상황이라 그런 기근이 자주 찾아 왔다. 그것은 옛 종주국에 식량을 의존해야 할 상황이 자주 왔음을 뜻한다. 결국 독립은 허울뿐이고 실제로는 옛 종주국들에 의존해 사는 나라로 남은 셈이 됐다.

우리나라를 돌아보자. 해방 직후에는 쌀을 공출이란 명색으로 일본에게 수탈당하지는 않았지만 농사의소출이 워낙 낮아서 식량이 모자라, 미국의 잉여(剩餘)농산물, 이른바, PL(Public Law) 480에 의한 식량원조에 의존했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식량 면에서 독립국이 될 수 있었는가? 1977년 쌀 자급이 성취된 때부터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뒤에도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부터 많은 양의 곡류를 도입하고 있지만 그건 우리 돈으로 사들이는 거니 형식적으로는 의존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이 우리나라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양곡을 팔지 않겠다면 그것도 문제기 될 수 있으니, 우리나라는 잠재적으로 외국에 곡류를 의존하고 있는 셈이기는 하다.

어쨌거나 사람은 늘 먹어야 하는 존재임으로 식량의 독립이 빠진 독립은 진정한 독립일 수 없다 이 문제는 특히 아프리카에서 큰 이슈(Issue)이지만, 인구에 비해 농토가 상대적으로 좁은 나라에서는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다.

이른바 부국들은 2차 세계대전 종식(終熄)과 함께 아프리카 여러나라들에게 독립을 주고 그 신생 독립국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원조를 해왔다. 그런데 그 효과가 기대를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오죽했으면 죽은 원조(援助: Zambia 출신 젊은 사회학자 Dambisa Moyo의 Dead Aid) 라는 책이 한 때 국제적으로 화제에 올랐을까(Time지에 이 해에 가장영향력 있었던 인물로 모요를 뽑음)? 이제까지의 아프리카를 위한 원조는 아프리카의 식량 독립을 위해서는 말은 무성하게 했지만 실제로는 이뤄진 게 별로 없다.

식량의 독립을 잘 설파(說破)한 명언(名言)으로 옛 중국의 한 명재상(名宰相)이 임금에게 한 말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먹을거리”라는 말을 덮을만한 말은 없을 것이다. 먹을거리가 백성의 하늘이니 농사가 곧 사람들의 하늘의 어머니란 뜻이기도 하다. 농사를 앞으로 좋은 세상 만드는 일의 바탕으로 여겨야 할 거다. 요즘 생각께나 한다는 이들 그러고 있는가? 아닌 것 같다. 매우 아쉽다.

우리도 진정한 식량의 독립을 위해 더 깊고 더 넓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면적의 농토가 부양해야할 인구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사실을 생각의 바닥에 깔고 미래의 농사문제를 구상해야 할 것이다.

내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국토는 넓지 않고 인구는 많아서 사람이 살 집은 높게 지어 층층이 포개져 살면서 왜 농사는 땅에서만 지으려하느냐는 점이다. 100층 정도로 높은 데에 살면서 꽃 몇 송이, 상추 몇 포기 사기 위해 100 층을 오르락내리락할 것인가? 농사란 원래 사람을 위한 것이니 농사는 사람이 사는 데에서 지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앞으로 사람이 땅을 벗어나 여러 층에 포개져 산다면 농사도 여러 층에 포개서 지으려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궁리는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왜일까? 공장식 농장이란 말이 있기는 했지만 그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움츠어들고 있는 것 같다. 빛은 직진(直進)하기 때문에 농사를 층층이 짓기는 어렵다고 여길지 모르나 빛은 직진하지만 빛을 구석구석까지 비쳐줄 전기 줄은 어디든 구부러져 이를 수 있다. 그럴 때 작물에게 광합성을 어떻게 하도록 할 건지 같은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일 거다. 그런데 광합성 연구는 농업분야에서조차도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