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기농업 농업의 본질을 알고 논하자
글쓴이 홍종운 날짜 2015-09-23 조회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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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나이 79 세인 해의, 9월 23 일이다. 평생 처음 맞는 날이다. 그래서 아침 산책길을 설레는 마음으로 나섰다. 산책길에서 무얼 보게 될까?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산책길은 어제 걸었던 길이지만 길 가의 푸나무의 종류는 어제 보던 것과 같지만 개체들로 볼 때 어제와 같은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됐다. 가령 화살나무는 어제 서 있던 자리에 서 있지만 어제보다 잎이 더 많이 붉게 물들고 있다. 그렇게 따져보면 삼라만상이 어제와 같은 건 하나도 없음을 깨닫는다. 무론 나도 그 중 하나다. 나는 우주 속에서 배율이 무한대로 높은 현미경으로 보려해도 보이지 않을 존재이지만 나도 일정한 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운행하는 우주의 일부다. 한 순간도 한 자리에 있지 않은 존재다.

산책길에서 어떤 이가 비료도 주지 않고 물만 주며 기르고 있는 배추를 보았다. 배추가 자라는 게 초라했다. 병도 벌레도 없었다. 그거 배추랄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사람이 먹을 만한 배추라야 병도 생기고 벌래도 덤비는 거다. 농사란 그렇게 짓는 거다. 즉 사람이 먹을 게 있을 만큼 작물을 잘 기르고 병과 해충은 덤비지 못하게 방어하는 것 그것이 농사다. 그게 인류가 살아남아온, 사실은 더 풍성하게 살아남아온 이유다.

비료 때문에 병해충이 생기는 거라고? 물론 그럴 수 있다. 비료를 주면 사람에게도 먹을 게 많이 생기지만 병원성 미생물과 해충에게도 먹을 게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료를 쓰며 농사를 지을 경우에는 병해충으로부터의 방어(防禦)기술도 발달하는 거다. 그게 인류의 문명의 한 축이기도 하다.

비료를 쓰기 전에는 병해충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1800 년대 중반에 아일랜드와 북유럽 국가들에는 그 때 그 지역 사람들의 주식(主食)이다시피 했던 감자에 역병(疫病: Potato blight)이 휩쓸었다. 빗자루 병(Witch`s bloom)도 만연(蔓延)했다. 굶을 지경에 이른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移民)하는 계기가 됐다. 오늘날 그 지역에서는 감자농사가 잘된다. 그동안 감자를 보호하는 기술이 발전했고, 그래서 감자에 비료를 적절히 주면서 농사를 잘 짓고 있다.

유기농업이란 용어 좀 생각을 덜한 말 같다. 어쩌면 1962년에 발간된 Rachel L Carson의 “침묵의 봄”의 영향도 받았을 법한 이야기다. 카슨은 산업에 종사한 사람은 아니다. 해양생물학자 였던 그분은 특히 해양생물 보존에 관한 작가로 변신한 뒤에, DDT의 환경위해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가 됐다. 그런 시각에서 쓴 책이 침묵의 봄이었다. 작가란 과학자는 아니다. 작가란 Sensational에 치우칠 수 있다. 그 책은 센세이션을 이르켰다. 센세이션에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나도 그 책 읽었다. 그러므로 나도 환경론지다.” 라는 식의 풋 환경로자들을 양산(量産)할 수 있다. 누가 비료도 환경에 나쁘다하면 덩달아 비료가 환경에 해롭다고 맞장구를 친다. 유기농업을 참양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그런 이들도 있을 것이다. 농사의 기본도 알려하지 않은 채. “회의적인 환경론자(Skepitial Enviromentalist: Bjørn Lomborg)”를 참고

지금처럼 모든 분야에서 능율을 추구하는 판국에 옛날 농사를 옛날 관행처럼 짓자는 건 무리일 것이다. 가게를 하나 차렸다고 하자. 도둑이 탐낼 게 하나도 없어 밤에도 잠글 필요가 없는 가게로 운영할 것인가. 도둑으로부터 지킬만한 게 있는 가게를 만들 것인가?
“유기농업”이란 말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이었을까?

삶이라는 게임은 방어라는 게임이이기도 하다 농사는 방어를 동반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모든 일은 본질을 알고 논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