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수원의 돌깁운동가들
글쓴이 홍종운 날짜 2015-09-17 조회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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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참 행복하고 또 의미 있는 날이기도 했다. 왜 행복했는가? 친구들과 만나 마음을 열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입에 맛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집에 가서 점심을 함께 먹었는데....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 있었다. 한 친구는 달포 전에 치질을 않았는데 그 이야기가 매우 재미 있었다. 수술은 하지 않고 약물로 치료했는데 의사가 애우 자상했단다. 그 이야기는 사소한 이야기였지만 친구가 이야기하니 재미있었다. 허물없는 사이라 그랬을 거다.

그 치질에서 벗어난 내 친구는 며칠 전에 속초에 다녀왔는데 전쟁 때에 내려온 함경도 사람들이 모여사는 데에 “아바이 마을” 이라는 데가 있는데 음식 맛이 썩 좋았다고 했다. 가자미 식혜와 여러 가지 젓갈류로 상을 차렸는데 정갈하고 맛도 좋았다고 했다. 내 입에 침이 고였다. 우리가 한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퍽 재미있었다. ”언제 속초에 가면 그 마을에 꼭 들려봐야지.“ ”음식 값도 친절했지... 한 사람 당 만원...“

우리에게 점심을 차려주신 분들에게 음식이 매우 맛있다고 ... 대단히 감사하다고 했다. 매실차와 커피까지 덤으로 대접 받았다.

우리가 음식을 먹은 집이 화성박물관과 가까워서 거기에 주차했다. 차를 타러 밖물관에 간 김에 박물관에서 차를 한 잔 더 하기로 했다. 하던 이야기가 남은 것 같기도 해서....방물관이 매우 잘 꾸며졌다고 생각됐다. 차를 서비스하는 이도 친절하고 상냥했다. 박물관 입구에 “전국 최우수 박물관”으로 선정됐음을 자축하는 프라크드가 걸려 있었던 게 생각났다. 그럴만 하다고 생각됐다. 차를 마시고 나오려니 ”수원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학술발표회가 열리고 있음을 알게 됐다. 행사에 참석하기는 어려워 인쇄물만 얻어왔다. 집에 와서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그 때(1910-1925 년 무렵)에는 서울에 가서 공부하던 중학생들만 돼도 벌써 독립운동도 하고 국민을 계몽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그러다가 일제의 관헌에 끌려가 모진 매도 맞고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 하고--- 그랬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분들이 그 때의 신문기사 같은 걸 정성껏 모으기도 했고....그걸 자료로 만들기도 했고... 참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고 많음을 깨닫는다.

우리 정부와 우리나라를 가진 때에 이 나라에 살게 된 게 참으로 감사하다고 생각됐다. 이런 나라에 살면서 나라를 가진, 그것도 매우 풍요로운 나라를 가진 고마움을 잊고 경거망동하는 이들... 이런 기록이 있는 줄이나 알까? 국사 참으로 바르게 가르쳐야 할 거다.

이른바 종북(從北)한다는 이들 북한이 얼마나 살벌한 체제 하에 있는지 알기나 하는가? 오늘 점심을 함께 먹은 친구 중 한 명은 흥남에서 미군 군함 타고 부산에 온 이이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아버지가 죄를 진 걸 알더라도 자식이 고발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는데...그만큼 천륜을 중시하는데 그가 북한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아버지를 고발하면 영웅으로 여겼다고 했다. 그런 체제가 북한 체제인데 무어가 좋아 종북한단 말인가?

나 비록 나이 많이 먹었지만 힘닿는데까지 이 나라를 위해 적은 터럭이라도 들어야겠다. 그때 그 꽃다운 나이에 독립운동하다가 요절(夭折)하신 분들을 저승에 가서 만났을 때 얼굴이라도 들을 수 있으려면 적어도 무어라도 해야 할 거라고 생각됐다? 찾으면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