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부지런히 사시고 계시는 선생님의 가르치심
글쓴이 홍종운 날짜 2015-09-15 조회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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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일하셨던 분이 남기신 우리나라 급식의 역사 이야기: 지금 90 세이시면서 아직도 후학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도하시고 계신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님을 지난달에 대학교 졸업이후 처음 뵈었을 때 나눠주신 “우리나라 급식의 역사를 말하다”라는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칼럼의 별쇄(別刷)를 읽으며 많은 걸 느꼈다. 교수님은 내가 수원 서둔동에 있는 농과대학에 다니던 때(1958년)에 미국에서 귀국하시면서 그때 농가정과 교수님으로 부임하셨다. 그때에도 열성이셨지만 계속 열심히 일하셨음을 그 칼럼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칼럼은 “1. 6.25 전쟁으로부터 부흥한던 때의 고아원 급식”으로 시작해서 “IX. 포장마차 회상”으로 끝나는데 중간에 ‘88년 서울올림픽대회 급식운영 회고“도 실려 있다.

1958년 무렵에는 나라 살림은 외국의 원조에 거의 의존하다시피해서 했던 때라 국민 모두의 삶이 각박하던 때라 그 때 고아원의 급식이란 입에 오릴 수 없을만큼 딱했다. 전쟁이 나은 무수한 고아들을 고아원에 수용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때 고아원의 급식은 주로 외국(주로 미국)의 원조 물자로 이뤄 졌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분유를 먹고 설사를 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 원인은 우유를 먹지 않던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우유 알레르기(Milk alergy: 우유소화효소 결핍증: Lactase deficiency 때문임) 때문이어서 분유를 다른 곡류 가루와 섞어 조리해서 주도록 권했다는 이야기도 들어 있다. 그때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받았던 고통에 대해 교수님깨서 쓰신 건 차마 어디에도 옮길 수 없다. 교수님은 우리의 아픈 곳에 대해 그만큼 아셨덤 분이셨다.

그 무렵 나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미국 원조물자 중에 시골 사람들에게 설탕, 밀가루, 외국산 쌀. 치즈 같은 것도 배급됐었다. 설탕, 밀가루 같은 건 문제가 없었는데 쌀은 배에 실어 운반하는 중에 묻은 기름 냄새 때문이 환영 받지 못했고 치즈는 낫이 설어 환영받지 못했다. 치즈는 커다란 캔에 든 거였는데 사람들은 그 내용은 비위에 맞지 않는다면서 두엄 탕에 버리고 그 캔만 우물애서 물을 긷는 두레박으로 쓰곤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한 급식준비를 위해 많은 분들이 고생하신 이야기를 접할 때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그것도 매우 성공적으로 치러졌다는 사실에 들떠 있던 나를 돌아보며 내가 무심한 사람이었음을 뉘우쳤다. 1981년 가을에 온 국민이 열망하던 세계 하계올림픽의 우리나라 개최가 확정됐고 같은 때에 아시안 게임도 우리나라에서 열리기로 결정됐다. 국민들은 모두 기뻐했지만 두 행사의 급식계획을 준비하셨던 분들에게는 두렵고 큰 부담이었다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급식체계의 틀이 잡히지 않았었으니....

교수님은 1962년에 하계 올림픽이 열였던 일본의 경험을 나눠 받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셔서 많을 걸 배워오시기도 하셨고.... 여러 대학의 교수님들과 전문가들이 총 동원되어 급식프로그램을 짜야 했고 그 팀은 끈임 없는 훈련과 연습을 거듭해야 했단다. 그 고충이 얼마나 컸겠는가? 무슨 국내의 축하행사 정도가 아니고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수천 명의 선수들과 임원들이 오는 행사이니...관광객까지 합치면 수만 명이 될 텐데. 그거 대단한 지략과 끈기가 필요 했을 게다. 거기에서 앞장서셨던 분들 가운데에 교수님도 계셨던 게다.

올림픽이 여리던 1988 년에는 우리 가족은 아프리카 가나에 있었는데 그때 가나의 TV 방영시간은 하루에 두세 시간으로 제한 돼 있었고 그나마 영국 TV를 재방송하다보니 그 역사적인 올림픽의 개막식은 실황으로는 보지 못했다. 무척 아쉬웠다. 두어 주 지난 뒤에야 대사관이 빌려준 테잎으로 그 개막식을 보았다. 뒤늦었지만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어떤 파티에서 가나 주재 호주 대사의 부인을 만났다. 내게 일부러 다가와, “Congratulation! Dr. Hong. I watched Seoul Olympics Opening Ceremony. I rearly did not have any idea about country Korea. One of my relatives died during Korean War there as a soldier. Since then I simply have thought that Korea is a small insignificant, war torn country. The Opening Ceremony of the Olympics have awoken me. It was a drama! Tears came down from my eyes. Korea was a such a wonderful country! I was proud of my relative who died for such a wonderful country. Congratulations!"

서울 올림픽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우리나라의 위상을 그만큼 높인 행사였다. 그 덕을 지금까지도 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 때 "Koreana"가 불렀던”손에손잡고: Hand in Hand"는 우리나라 사람들 뿐 아니라 세계인들까지 감동시켰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의 정신인 “홍익인간” 정신을 만방에 다시 한 번 더 알린 행사가 88 서울 올림픽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음을 맏게한 행사였다고도 생각한다.

그 때에는 그 거창한 행사를 위한 급식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수고하신 교수님 같은 분들이 계셨을 거란 건 전혀 상상도 못했었다. 한 나라를 나라답게 꾸려가는 데에 국민의 능력과 희생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 활약하셨던 교수님 같은 분이 계셨던 게 얼마나 큰 다행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교수님께서는 이제 90 세를 넘고 계시는대도 아직도 정정하시고 자기가 가지신 걸 후학들을 위해 모두 나눠주시기에 바쁘신 모습에서 큰 가르침을 받는다. 교수님께서 만수무강하실 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