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콩과식물을 이용하여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
글쓴이 홍종운 날짜 2015-09-12 조회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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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과식물을 이용한 토양비옥도 높이기: 이 문제는 지금도 큰 관심사다. 특히 비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지역의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다. 이 분야를 거론함으로서 명성도 얻고 연구비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오해(誤解)도 있고 곡해(曲解)도 있다. 이 문제가 거론된 지 퍽 오래되지만 실제로 농가가 그런 연구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경우는 기대만큼은 없다. 비료를 못 쓰는 나라의 작물 수량은 늘 낮다. 그 나라들에 비료가 적절한 가격에 공급되지 않는 한 앞으로 낮을 것이다. 여러 가지 원조를 계속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곡해란 이런 거다. 콩과작물을 재배하기만 하면 흙이 절로 좋아지리라는 기대하는 거다. 그건 잘 못 된 것이고, 기술적으로 두과 작물활용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농서직서의 갸념이 옳긴 한데 그건 실천하기 어렵고...

조선(朝鮮) 때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발간된 농사직설(農事直設: 1429 년)이라는 농업기술에 관한 책이 있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토박한 밭에는 녹두를 심고 무성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갈아 업고 그 이듬해에 곡식을 심으면 벌래도 생기지 않고 토박한 땅이 좋은 땅이 된다.” (두과작물의 질소고정에 대한 개념이 서양에서 처음 알려진 건 1889 년 Martinus Beijerinck에 의해서다.) 시쳇말로 하자면 두과식물을 이용하여 땅을 비옥하게 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농사직설의 개념이 오늘날 박사들의 생각보다 더 이치에 맞는다. 오늘날 박사들은 두과식물을 재배하기만 해도 땅이 좋아지는 걸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농사직설의 개념은 척박한 땅에 두과식물을 재배하는 것만으로 흙이 비옥해질 수는 없고 근류균에 의해 고정된 질소가 들어 있는 두과식물을 땅에 묻어주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바른 개념이다. 왜냐하면 근류균이 공급해준 질소의 대부분은 식물체 내에서 종자로 이동하고 잎이나 줄기에 남는 양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즉 어떤 땅에 콩을 재배했다는 사실 때문만으로는 흙이 비옥해지지는 않는다. 콩이 자란 다음 그 콩을 흙에 들어가게 해 주어야 흙이 비옥해지는 법이다. (이게 농사기설의 개념이다.)

그런데 어떤 농가도 녹두를 심어 무성하게 자란 다음에 갈아엎지는 않는다. 그게 관행이었다면 이 나라에 숙주나물과 빈대떡은 생기지 않았을 거다.

열대지방에는 먹는 씨앗이 생기지 않는 세스바니아 (Sesbania) 같은 질소고정을 잘 하는 두과식물이 있지만 그걸 활용하는 농가는 거의 없다. 먹을 걸 재배하기에도 모자라는 땅을 그런데에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 같은 기관이 나서서 채종을 해주면 좋을 텐데 그러는 정부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물과학원이 일부 하고 있고 민간에서도 헤어리베치나 자운영의 채종을 하고 있지만 국립종자원에서는 하고 있지 않다. 이 문제 잘 생각해야할 문제 같다. 생산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세스바니아 같은 경우 3000 평의 땅에서 질 120 kg을 고정하는 데에 120 일이 걸린다. (하루에 3000 평의 땅에서 1kg 쯤의 질소를 고정하는 셈이다. 그걸 위해 땅을 갈고 씨 뿌리고, 수확해서 절단하고 흙에 갈아엎고). 현대식 요소공장에서는 하루에 1000 톤 (1000,000 kg)의 요소 (질소로 460,000 kg)가 고정된다.

세계적으로 볼 때 두과식물의 질소고정능력의 활용이란 말은 있지만 실제로활용은 되고 있지 않다 (과학자들의 논문에서는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쓰여 있지만). 차라리 화학질소비료 쪽에 관심을 갖는 편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이른바 친환경농업이라 것도 말은 무성하게 하지만 실속은 없다.

차라리 화학비료를 적절히 주며 농사를 짓는 편이 실속도 있고 편리하기도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편리를 더 추구하게 될 것 아닌가?

사진 설명: 두과식물은 무성하게 자라는데(앞 쪽) 두과식물이 아닌 건 생육이 매우 부진하다(뒤 쪽). 그렇다고 모든 땅에 두과식물만 기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산책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