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늘,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쓴이 홍종운 날짜 2015-07-14 조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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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늘 하루 잘 살았다. 우리들이 세종시 가까이 있는 연남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올해가 65년째 되는 해다. 꼭 그래서는 아니었지만 한 해에 서너 번 만나는데 오늘이 올에 세 번째 만나는 날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이 더 있지만 고향을 떠나서 사는 이들도 있고 해서 우리가 정해진 날에 만나는 이들은12 명이다. 그중 4분이 여자들이다.

요즘 무얼 좀 쓰는 게 있어서 오늘 새벽 4 시에야 잠을 잤다. 아침 8 시 반에 집을 나서서 수원 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수원역에서는 광주행 새마을호를 타고 조치원까지 갔다. 거기에서 친구들을 만나 택시로 “둥굴박”이라는 한 농가 맛 집까지 택시로 갔다. 평소에는 그리 비싼 점심을 먹지 않지만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라 한 사람 당 25,000 원 하는 걸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이 정갈하기도 했고 맛도 좋았고 양도 넉넉했다, 오래간만에 좋은 음식도 먹어가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내가 이 따듯한 모임의 회장이다. 말이 회장이지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살림은 고향에 사는 총무가 다 하고 언제 어디에서 마날지 같은 건 여럿이 뜻을 모아 정하니 그렇다. 또 장노님 한 분이 대전에 사시는데 그분이 많은 일을 도와주신다. 그래도 회장은 회장인지라 식할 때 건배사도 하고 덕담도 하곤 한다. 오늘은 수원역 지하상가를 지날 때 평소에 꽃을 사는 꽃집을 지나다가 생각이 나서 네 분 여자동창들에게 주려고 장미꽃 네 송이를 사 들고 갔다. 그걸 식사하기 전에 나눠드렸다 (여자 동창 한 분이 안 와서 남는 건 식당의 여자 종업원에게 주었다.). 받는 분들이 의외라며 좋아 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졸음이 왔다. 그래도 다행히 수원역을 지나치지 않고 잘 내렸다. 세류역까지 전철로 와서 택시로 집에까지 왔다. 집에 와서 이내 골아 떨어졌다. 아내의 밥 먹으라는 천둥 같은 고함소리에 깨고 보니 초저녁이었다. 워낙 잠이 깊이 들어 있어서 천둥 같은 소리를 몇 번 쯤 발동했던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생각해보니 오늘은 늙은이의 하루 치고는 괜찮은 하루를 보낸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굴러 가는 걸 조금쯤은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내가 타지 않아도 운행하게 되어 있는 것이니 내가 타 준 것이 작게나마 도움이 됐을 테고, 조치원 역의 택시는 우리가 타지 않았다면 그 시간 동안 역에서 죽치고 있었을 테고 “뒤웅박”이라는 농가 맛 집도 우리가 안 가도 종업원들은 그 시간에 서성였을 테고,,. 거기에 가서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즐거웠고, 행복했고,,,

세상이란 것 이렇게 굴러가는 것 아닐까? 그러는 중에 서로 서로에게 도움도 되고... 서로 “감사합니다.” 하며 사는 것 좋은 것 아니겠나? 메르스 공포는 어지간히 가셔가고 있는 기미가 확실히 보였다 그 농가 맛 집에 손님들 꽤 많았다, 그 가운데에 우리들도 끼었을 걸 생각하니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저녁나절에 늘어지게 잤으니 오늘 밤에도 요즘에 써오던 것과 씨름해야겠다. 好 好 好 好 好. 그런데 회원 두 분이 못 오셨다. 큰 변은 없길 빈다.

오가는 길에 차창 밖의 논과 밭을 바라보니 농사가 잘 됐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농업인들 농사 참 질 짓는다. 큰 기쁨이다. 농자 천하지대본이니 농사가 잘 돼야 나라가 태평해진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산이 짙푸른 것 부국의 상징이다. 우리 산 참 아름답다. 옛날 산과 사뭇 다르게...우리나라 부자나라다. 더 부자나라 만들어가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