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초등학교 동창회
글쓴이 홍종운 날짜 2017-03-24 조회 181
첨부파일  





초등하교 동창회: 엊그제 세종시 남면에 다녀왔다. 비록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한 해에 네 차례 식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들을 마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초등하교를 졸업한 것은 6.25 한국 전쟁이 일어났던 해인 1950 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 초등학교애는 학생들이 괘 많았다. 그 해에 함게 졸업한 학생들이 100 명 쯤 됐었다. 전쟁 때 비명에 간이들도 있었고, 그 뒤에 여러 가지 이유로 작고한 이들도 있고 여러 곳으로 이사 간 이들도 있어 지금 만나는 이들은 모두 12 명뿐이다. 여자 4 명, 남자 8 명....나도 고향이 아닌 수원에서 살고 있어서 처음부터 이 모임에 참여하지 못했다가 8 년 전 부터인가 이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때에는 15 명이 만나고 있었다. 그 동안 3 명이 작고했다. 그래서 지금 모이는 이들은 12 명뿐이다.

작년부터인가, 나는 거동이 전 같지 않아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 모임에는 꼭 참석한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나마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만나자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모이는 곳이 우리 학교 가까이 있는 한 식당이었다. 수원에서 거길 가자면 집에서 택시로 수원 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조치원에 가서, 조치원에서 연기까지는 버스로 가야 한다. 움직이는 기차에서 걷는 게 특히 불편해서 조치원 역에서 내리려면 천안 역에서 기차가 서있는 동안 승강구까지 가야 했다.

어렵사리 모임이 있는 곳에 당도하여 점심도 함께하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헤어질 무렵 농사를 짓는 두 분들이 모두에게 선물을 주었다. 한 분은 밤을 한 자루 주고 한 분은 흑미와 집에서 짠 참기름을 주었다.

난감했다. 빈손으로도 거동이 불편한 터에 무게가 녹녹치 않은 짐을 들고 올 생각을 하니...

그렇지만 선물을 담아 준 이들의 따듯한 마음을 저버리고 올 수는 없었다.

아침에 연기까지 가던 때보다 더 훨씬 더 힘들게 집에까지 왔다.

힘들었지만 고맙고 감사한 하루였다.

자기들이 몸소 땀도 흘리고 노심초사(勞心焦思) 하면서 수화한 걸 아낌없이 나눠주는 그 따듯한 마음.... 순진무구((純眞無垢)하던 때를 함게 보냈던 친구들이었으니 그런 너그러움도 있었을 게다.